네온의 메아리 (Neon Echoes) Act 2: 하얀 토끼를 쫓아 (Chasing the White Rabbit)

  네온의 메아리 (Neon Echoes) Act 2: 하얀 토끼를 쫓아 (Chasing the White Rabbit) 비였다, 아니, 비라기보다는 도시 자체가 내뱉는 축축한 한숨 같은 것이 그녀, 윤서의 얼굴을 적셨다. 클럽 ‘크롬 엘리시움’의 문턱을 넘어선 순간, 공기는 무게를 바꾸었다. 안에서는 살갗을 데우던 인공적인 열기와 낮은 베이스 음의 진동, 그리고 이름 모를 향수와 땀 냄새, 희미한 오존 냄새가 뒤엉켜 폐부를 끈적이게 감쌌었지만, 바깥은 달랐다. 차갑고, 날카롭고, 젖은 금속과 썩은 내, 그리고 저 아래, 오염된 강물의 비릿함이 희미하게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골목은 좁고 깊었다. 네온 한강 아르콜로지의 혈관처럼, 거대한 인공 구조물의 심부로 이어지는 어둡고 축축한 통로. 발밑에서 물이 튀었다. 번들거리는 기름띠 무지개가 빗물 고인 아스팔트 위에서 느른하게 몸을 뒤채는 것이, 클럽의 레이저 광선과는 다른 종류의 현란함으로 어른거렸다. 그래, 레이저. 눈꺼풀 안쪽에서 아직도 잔상처럼 명멸하는 푸른빛, 붉은빛의 가느다란 선들. 그것들이 그녀의 맨살 위를 간질이듯 스쳐 지나갔던가, 아니면 미나의 손길이었던가. 미나. 이름만 떠올려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 혹은 저릿한 감전 같은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남은 듯, 음악 소리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들려오던, 꿀에 절인 독처럼 달콤하고 위험한 속삭임. 아니, 속삭임이 아니라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 눈빛이, 피부 위를 춤추던 AR 문양들이, 온몸의 감각을 붙들고 뒤흔드는 주문 같았다. VIP 룸의 희미한 네온 아래서, 그녀의 입술이 닿았던 순간의 아찔함. 숨을 훔쳐갔던가, 아니, 네온 불빛이 뇌수를 삼켰던가. 몽롱함 속에서 목덜미에 느껴졌던 따끔함, 미세한 전류 같은 것이 흘러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건 너를 더 빛나게 할 거야. 그녀가 그렇게 말했던가? 아니, 말은 없었다. 그저 그런 느낌, 그런 약속 같은 것이 그녀의 눈빛 속에서, 미소 속에서, 손길 속에...

네온의 메아리 (Neon Echoes) Act 1: 디지털 유혹의 밤 (Night of Digital Temptation)

  네온의 메아리 (Neon Echoes) Act 1: 디지털 유혹의 밤 (Night of Digital Temptation) 네온. 보랏빛, 시리도록 푸른빛, 피처럼 붉은빛. 빛줄기들이 엉겨 붙어 시야를 태웠다. 공기는 무겁고 축축했다. 베이스의 진동이 갈비뼈를 타고 올라와 심장을, 아니, 심장이 있던 자리를 두드리는 듯했다. 네온 한강 아르콜로지, 그 거대한 강철과 유리의 탑들이 뱉어내는 오염된 숨결 아래 파묻힌 지하 클럽 ‘크롬 엘리시움’. 여기는 중력 대신 소리가 사람들을 지배하는 곳. 합성 베이스 음이 바닥을, 벽을, 내 몸 속 장기들을 끊임없이 흔든다. 액체처럼 농밀한 소리.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빛줄기들. 푸른색 레이저는 안개를 칼처럼 베고 지나가고, 붉은 조명은 벽에 튄 피처럼 번들거린다. 보랏빛 안개는 싸구려 향수와 땀 냄새,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달콤하면서도 역겨운 화학적 베이프 향과 뒤섞여 후각을 마비시킨다. 어쩌면 마비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이 깨어나는 것일지도. 사무실의 건조하고 메마른, 형광등 불빛 아래 잠자고 있던 감각들. 월요일이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겠지. 플라스틸 책상,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 위로 손목을 누르는 익숙한 압박감. 쌓여가는 전자 메일 알림음, 종이 서류의 바스락거림, 복도 끝 정수기에서 물 따르는 소리, 동료의 무미건조한 키보드 소리… 그 모든 회색빛 소음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멀리, 다른 우주에 있는 것처럼 아득하다. 그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네온이다. 빛이, 소리가, 냄새가 나를 감싼다. 벗어날 수 없는 고치처럼. 아니, 내가 기꺼이 파고든 안식처처럼. 발걸음을 옮긴다. 바닥은 술과 이름 모를 액체들로 질척거린다. 발을 뗄 때마다 쩍, 하고 달라붙는 소리가 난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어쩌면 정말 늪일지도 모른다. 현실이라는 마른 땅에서 도망쳐 온, 빛과 소리의 늪. 어제 늦게까지 붙들고 씨름했던 보고서의 무게가 아직도 어깨를 짓누르는 듯하다. 하지만 괜찮다. 여기서는 모두가 무언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