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밤 서장

 

이 글은 픽션이며, 현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우연입니다.

작가는 이 글이 사실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2024년 10월 26일 오후 9시. 삼청동 안가.

퀴퀴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밀실. 값비싼 양주와 시가, 소독약 냄새가 뒤섞여 후각을 마비시킬 듯했다. 두꺼운 커튼은 바깥세상과의 완벽한 단절을 강요했다.

소파에 몸을 거의 누이다시피 한 윤석열 대통령이 신경질적으로 테이블 위의 얼음 조각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짜증, 그리고 깊은 불안감이 뒤섞여 있었다.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사사건건 발목이나 잡고, 언론 놈들은 개 떼처럼 물어뜯고… 마누라 문제로 특검까지 하겠다고 저 난리들인데!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어!" 그는 허공에 대고 악을 쓰듯 불평을 쏟아냈다. "이걸로 좀 숨통 트이나 했더니만… 빌어먹을!" 그의 시선이 마침 켜져 있던 TV 화면으로 향했다. 때마침 긴급 속보 자막과 함께 북한 관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자 끝에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노골적인 위기감 토로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식은땀이 그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 턱밑까지 적실 지경이었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자세였지만, 미간을 희미하게 찌푸린 채 테이블 위의 술잔을 천천히 돌리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젊은 여자의 사진과 함께 그녀의 담화 내용이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전해지고 있었다. 김여정. “…남조선 괴뢰 군부… 용납 못 할 군사적 도발… 책임은 윤석열 괴뢰 통치배… 상상하기 힘든 파멸적 결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비난과 협박이었다.

윤 대통령이 김용현을 향해 턱짓했다. 말투에는 경멸과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야, 김용현."

"예! 각하!" 김용현의 목소리가 거의 비명처럼 튀어나왔다.

"머리는 장식이냐? 이게 내가 원했던 거냐고. 어?" 윤 대통령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저것들이 저렇게 입만 나불대는 거? 이걸로 지금 이 X같은 상황이 뭐가 달라지는데? 어? 내가 왜 판까지 깔아줬는지 아직도 몰라?"

"죄, 죄송합니다, 각하! 하, 하지만 저희가 입수한 정보로는 분명히 도발 확률이…" 김용현은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찾으려 애썼다. ‘망할 노상원! 대체 뭘 믿고 장담했던 거야!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그의 머릿속은 터질 듯 복잡했지만, 아무런 대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보? 정보 좋아하시네." 윤 대통령이 비꼬듯 말했다. "그래서, 그 잘난 정보로 알아낸 게 고작 저 혓바닥 놀리는 거였어? 판 깔아줬으면 좀 물어줘야 할 거 아냐! 예의도 없어, 저것들은!"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신원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각하, 북한의 의도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저들의 저런 식의 대응이 오히려 더 위험한 추가 도발의 전조일 수도 있습니다. 안보 태세에 한 치의 빈틈도 보여선 안 됩니다."

윤 대통령이 신원식을 쏘아보았다. "그래서? 그냥 죽 쒀서 개 주라는 거요? 손 놓고 기다리다 당하라는 거냐고!"

신원식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듯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아닙니다, 각하. 하지만 섣부른 대응은 오히려 저들의 노림수에 말려드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지만, 방 안의 공기를 장악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외부의 위협에 흔들리지 않는 내부의 강력한 기강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들의 도발 의지를 사전에 꺾고,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로 삼는… 그런 방식의 접근도 고려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원식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용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마치 구명줄이라도 잡은 듯, 그의 얼굴에는 필사적인 아부의 미소가 떠올랐다. "맞습니다, 각하! 신 실장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군은 각하께 절대 충성합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내부부터 확실히 다잡으면, 저 북괴 놈들도 함부로 못 할 겁니다! 국민들도 정부를 믿고 따를 거고요!" 그는 '충성'과 '내부'라는 단어에 거의 울부짖듯 힘을 주어 말했다.

'내부 기강…' 윤 대통령이 나지막이 그 말을 되뇌었다. 김용현의 열성적인 '충성' 맹세는 마치 먼 배경 소음처럼 그의 귀를 스쳐 지나간 듯했다. 잠시, 그의 시선은 초점 없이 방 안 어딘가를 헤맸다. 방금 전까지 방 안을 채웠던 격한 감정의 파편들이 가라앉고, 그 자리에 훨씬 더 무겁고 다루기 힘든 종류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의 무게 속에서 윤 대통령은 오랫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의 어깨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짓눌려 천천히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가 김용현에게 다시 술을 따르라고 손짓했을 때, 그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지만 깊은 피로감만은 숨길 수 없었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았다. "…더 가져와."

김용현은 서둘러 술병을 들고 대통령의 잔을 채웠다. 그의 손놀림은 다소 부산스러웠고, 시선은 술잔에만 고정한 채였다. 신원식은 여전히 굳게 입을 다문 채였다. 그의 시선은 술을 따르는 김용현의 손과,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대통령의 옆얼굴 사이를 천천히 오갔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빈 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대통령은 새로 채워진 술잔을 들어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그의 눈은 여전히 먼 곳을 향해 있었다. 김용현은 술병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잠시 헛기침을 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신원식은 미동도 없이 앉아, 방 안의 무거운 공기를 응시하는 듯했다. 밀실 안에는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침묵만이 감돌았다.

2024년 10월 27일 오후 8시 경기도 양평군 별채


김용현은 거칠게 차 문을 닫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젯밤 삼청동 안가에서의 굴욕감이 아직도 분노로 남아 혈관을 타고 흘렀다.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짙은 향내가 훅 끼쳐왔다. 대청마루에는 두루마기 차림의 노상원이 홀로 앉아 있었다. 예편하고 기인처럼 산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보니 더욱 기묘했다. 김용현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마루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상원아!" 김용현의 목소리는 분노로 잠겨 있었다. "어젯밤 그거 뭐냐고! 판 깔아줬으면 뭐라도 물어줘야 할 거 아니야! 각하 앞에서 나만 완전 바보 됐잖아! 신 실장 그 자식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이냐고!" 그는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찻잔이 요란하게 덜컹거렸지만, 노상원은 여전히 평온했다. 그 모습이 김용현의 화를 더 돋우었다.

노상원은 들고 있던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김용현의 분노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았다. "용현아." 노상원의 목소리는 물처럼 고요했지만,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어중간하게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그는 피식 웃으며 김용현을 바라보았다. 그 웃음에는 조롱과 경멸이 뒤섞여 있었다. "고작 삐라나 뿌리고 있으니 무시당하는 거지. 제대로 하려면 주석궁에 미사일이라도 한 방 박았어야지." 그의 목소리는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마치 옆집에 돌멩이를 던지자는 듯 태연했다.

"미사일? 너 지금 제정신이야?" 김용현은 질겁하면서도 노상원의 비웃음에 얼굴이 벌게졌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이제 어떡하냐고! 각하께서 어제 나를 보는 눈빛 봤어? 완전… 나 이제 끝났다고! 어떻게든 만회해야 해! 방법 없어?" 그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매달렸다.

노상원은 그런 김용현을 지켜보며 속으로 즐거워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존심은 상한, 딱 조종하기 좋은 상태였다. "네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용현아. 방법이 글러먹었다는 거지."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김용현을 달랬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삐라 몇 장에 북한 놈들이 움직일 거라 생각했나? 아니면 저 벌레 같은 놈들이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어? 천만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용현에게 다가섰다. 그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뱀처럼 상대를 옭아매는 듯한 압박감이 있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건 너도 알지 않나?" 노상원이 김용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김용현은 움찔했지만 피하지 못했다. "국회에 앉아 있는 좀먹는 놈들, 거리에서 선동질하는 기생충들, 펜대 굴리는 족속들… 저것들이 날뛰는 꼴을 그냥 보고만 있을 건가? 나라를 바로 세워야지. 그리고 각하를 지켜드려야지." 그의 목소리는 낮고 은밀했다. 마치 위험한 비밀을 공유하자는 듯. "법대로? 절차대로? 그래서 지금 이 꼴 아닌가? 언제까지 저들에게 질질 끌려다닐 참이야?"

김용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노상원의 말은 그의 마음 가장 깊은 곳, 누구에게도 내보인 적 없는 불만과 분노를 건드렸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그건 너무 위험해. 잘못되면…"

"위험?" 노상원이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방 안의 향내처럼 기묘하게 퍼져나갔다. "용현아, 언제까지 그렇게 겁만 내고 살 건가? 평생 군인으로 살았다면서, 아직도 모르겠어? 기회는 언제나 위험과 함께 오는 거야." 그는 김용현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그 눈빛은 최면을 걸듯 김용현의 의식을 파고들었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그냥 이대로 장관 자리나 지키다가 옷 벗는 거? 아니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거?"

김용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역사의 물줄기'. 그 말은 그의 가슴속 깊이 숨겨둔 야망을 정통으로 찔렀다.

노상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더 낮은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생각해 봐, 용현아. 이 혼란을 잠재우고 각하께 확실한 힘을 실어드리는 거야. 저 버러지 같은 놈들을 쓸어버리고, 나라를 제대로 된 방향으로 돌려놓는 거지. 그렇게만 된다면… 너는 뭐가 될 것 같나?" 그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번뜩였다. "각하의 절대적인 신임은 물론이고, 사람들은 너를 구국의 영웅으로 기억할 거야. 네 이름 석 자가 역사에 새겨지는 거라고. 지금 너를 비웃는 놈들? 감히 네 앞에 나서지도 못할걸?"

김용현은 숨을 삼켰다. 노상원이 그려주는 미래는 너무나 달콤했다. 지금의 굴욕과 불안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그가 꿈꿔왔지만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붉어진 얼굴, 가빠지는 숨결. 그의 마음은 이미 노상원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었다.

"각하께서 지금 무엇을 가장 원하실 것 같나?" 노상원이 결정타를 날렸다. "이럴 때 목숨 걸고 충성심을 보이는 거야, 용현아. 제대로. 그러면 각하께서도 너를 달리 보시겠지." 그는 김용현의 어깨를 다시 한번 힘주어 잡았다. "망설이지 마. 네 손으로 새 시대를 열 수 있는 기회야. 내가 옆에서 도울 테니."

김용현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 대신 탐욕과 결단이 서려 있었다. '그래, 이게 기회야. 내 인생을 바꿀 기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노상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완벽했다. 이제 이 꼭두각시는 자신의 의지대로 춤을 출 것이다.

2024년 11월 1일 밤, 대통령 공관 서재

늦가을 밤의 스산한 공기가 서재 창틈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시간은 자정을 향해가고 있었지만, 윤석열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그 옆에는 반쯤 비워진 위스키 잔이 놓여 있었다. 옅은 알코올 기운이 머리를 감쌌지만, 그의 내면을 잠식한 깊은 고뇌와 짜증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젠장할…' 그는 속으로 욕설을 씹어 삼켰다. 연일 터져 나오는 야당의 특검 공세는 그를 질식시킬 듯 압박해왔다. 칼날은 언제나처럼 아내, 김건희를 향해 있었다. 검찰총장 시절부터 그를 괴롭혀 온 그림자였다. 얼마 전 김용현이 술자리에서 슬쩍 흘렸던, '다른 방법'에 대한 속삭임이 불현듯 귓가에 맴돌았다. '미친 생각이야… 하지만… 이것 말고 다른 수가 있나?' 그는 마른세수를 하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술기운과 피로, 분노가 뒤섞여 속이 울렁거렸다.

그때, 노크 소리도 없이 집무실 문이 열리고 김건희가 그림자처럼 들어섰다. 그녀는 방 안의 무거운 공기와 남편의 지친 뒷모습, 책상 위의 술잔을 조용히 시선에 담았다. 남편의 날카로워진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그녀는 잠시 문 앞에 서서 그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여보, 아직도 이러고 계시면 어떡해요." 그녀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다가와, 그의 헝클어진 넥타이를 매만져주려는 듯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윤석열은 신경질적으로 그 손을 피했다.

"…저 버러지 같은 것들이 또 뭘 떠들어댔는지 봤소?" 그의 목소리는 술기운과 짜증으로 잠겨 있었다. "결국 당신을 물고 늘어지려는 것 아니오. 나를 흔들기 위해서!"

김건희는 그의 반응에 잠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슬픈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는 그의 손 대신 책상 위의 위스키 잔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제가 뭐라고… 당신 같은 분이 저 때문에 이렇게 매일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뵈어야 하나요…"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듯했고, 시선은 바닥으로 향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그의 고통의 근원임을 절감하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움츠렸다.

윤석열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것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아내의 자책하는 목소리와 연약해 보이는 어깨가 그의 분노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굳게 쥐고 있던 주먹에 자신도 모르게 힘을 더 주었다.

김건희는 잠시 침묵하다, 마치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차라리… 제가 그냥 나가서 특검을 받겠다고 할게요.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렇게라도 해서 당신 어깨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다면… 전 괜찮아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비장함마저 서려 있었다.

"무슨…!" 윤석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격분으로 붉게 달아올랐고, 술기운과 뒤섞인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빈 위스키 잔을 벽난로 쪽으로 세게 던져버렸다. 유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당신 미쳤어!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당신을 저 시궁창에 던져 넣으라고? 절대! 용납 못 해!" 그의 고함 소리가 집무실을 울렸다. 책상 위 서류들이 그의 격한 움직임에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 어떤 비난도, 책임도 자신이 짊어지면 그만이었다. 그 순간, 얼마 전 김용현이 조심스럽게 꺼냈던 '마지막 수단'에 대한 제안이 더 이상 위험한 선택지가 아닌, 유일하고 필연적인 길처럼 느껴졌다.

광기 어린 분노가 가라앉자, 그의 눈빛은 차갑고 단호하게 빛났다. 그는 깨진 유리 조각들을 무심히 바라보며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선을 넘었어.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며 덧붙였다. "…김용현… 그 친구 말이 맞았는지도 모르겠군. 방법은… 그것뿐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단이 담겨 있었다.

김건희는 놀란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의 격정에 찬 반응이 가라앉자, 그녀는 미세하게 떨리던 어깨를 바로 폈다. 방금 전까지 눈물을 글썽이던 눈빛은 어느새 차분함을 되찾아, 결단을 내린 남편의 뒷모습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집무실 안에는 무거운 침묵과 깨진 유리의 파편, 그리고 위험한 결의의 냄새만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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