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비룡(漢江飛龍) 제1부(第一部): 늑대의 길

한강비룡(漢江飛龍)

제1부(第一部): 늑대의 길

제1장: 도망자(逃亡者)

어머니의 싸늘한 주검을 뒤로하고 문지방을 넘는 순간, 이선우는 더 이상 어제의 소년이 아니었다. 슬픔은 아직 가슴 속에서 뜨거운 용암처럼 들끓었으나, 눈물은 이미 말라붙었다. 남은 것은 오직 불타는 듯한 분노와, 진실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차가운 결의뿐이었다. 등 뒤에서는 자신을 낳고 길러준 세상 전부가 재가 되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집을 나선 순간부터 추격은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미 동네 어귀 곳곳에 그림자처럼 스며들어 선우가 빠져나갈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골목길은 어렸을 적부터 뛰어놀던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오늘 밤의 어둠은 적의(敵意)를 품고 소년을 노려보는 듯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만드는 그림자 하나하나가 살기를 띤 추격자처럼 느껴졌다. 선우는 숨을 죽이고, 어둠을 방패 삼아, 담벼락을 등지고 고양이처럼 움직였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들켜선 안 된다. 잡히면 끝이다.'

아직 청랑검법의 '청'자도 익히지 못한 몸. 그저 악에 받친 분노와 살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소년을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그는 달동네의 지리에 밝다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막다른 골목처럼 보이는 곳의 허술한 담벼락을 넘고, 좁디좁은 집과 집 사이의 틈새를 비집고 나아갔다. 몇 번인가 발소리를 들키거나 순찰하는 듯한 사내들과 마주칠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선우는 쓰레기 더미 뒤에 몸을 숨기거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져 위기를 모면했다. 온몸은 이미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도망쳤을까. 마침내 지긋지긋한 달동네를 벗어나 조금 더 넓은 도로변으로 나왔을 때였다. 한숨 돌리려던 찰나, 등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서라, 애송이!"

돌아본 순간, 선우는 절망했다. 어느새 따라붙었는지, 세 명의 검은 양복 사내가 길을 막아선 채 차갑게 웃고 있었다. 달빛 아래 번뜩이는 그들의 눈빛에는 자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독 안에 든 쥐로구나. 네 어미처럼 고통스럽게 만들어줄까, 아니면 순순히 목걸이를 내놓고 편히 갈 테냐?"

선우는 뒷걸음질 쳤다. 등 뒤는 차가운 벽이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는 품 안의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이것이 어머니의 목숨값이며, 아버지의 유품일지도 모르는 물건이었다. 결코 넘겨줄 수 없었다. 선우는 비록 무공을 익히지는 못했으나, 눈빛만은 결연했다. 죽더라도 곱게 당하지는 않으리라.

사내들이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왔다. 선우가 마지막 저항을 위해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그때, 마치 허공에서 나타난 듯 한 줄기 그림자가 선우와 사내들 사이로 섬광처럼 파고들었다. 그림자는 가늘고 날렵한 실루엣을 지닌 여인이었다. 밤의 장막 같은 검은 옷을 입었으나, 달빛에 드러난 얼굴은 얼음처럼 차갑고 서늘했다.

"누, 누구냐!"

사내들이 당황하여 소리쳤으나, 여인은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였다. 그녀의 몸은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잎처럼 부드럽게 움직였으나, 그 손끝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예리한 칼날이 스치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첫 번째 사내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목덜미를 가격당하고 쓰러졌고, 두 번째 사내는 복부를 맞고 숨 막힌 신음을 토하며 무너졌다. 마지막 남은 사내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고 달려들었으나, 여인의 손은 이미 그의 손목을 부러뜨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짓은 잔인할 정도로 우아했고, 그 끝은 강철보다 차가웠다. 순식간에 세 명의 흑룡단 요원이 전투력을 상실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선우는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것이 무공인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보던 일이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었다.

여인은 쓰러진 사내들을 차갑게 내려다본 후, 천천히 선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눈동자가 소년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 시선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 같아, 선우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여인의 시선이 선우의 가슴께, 옷 속에 감춰진 목걸이가 있는 자리에 잠시 머무는 듯했다.

"......"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많은 질문이 담겨 있는 듯했다. 너는 누구냐. 어찌하여 흑룡단에게 쫓기는 것이냐. 그 목걸이는 무엇이냐.

선우 역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할지, 누구냐고 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여인이 자신에게 적의를 품고 있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구해줄 유일한 동아줄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잠시의 침묵 끝에, 여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목소리마저 그녀의 눈빛처럼 차갑고 건조했다.

"나를 따라오너라."

짧고 단호한 명령이었다. 거절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선우는 잠시 망설였다. 이 미지의 여인을 따라나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지만 그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돌아갈 집도,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눈앞의 여인은 압도적인 무력을 지녔고, 자신을 쫓던 자들을 단숨에 제압했다. 어쩌면 이 길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몰랐다.

소년은 비틀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우는 마지막으로 쓰러진 사내들과,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골목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굳게 입술을 깨물며 여인의 그림자를 따랐다.

등 뒤로 두고 온 것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재가 되어버린 지난 삶이었다. 그의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과, 더욱 깊고 위험한 강호(江湖)의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선우가 윤채영을 따라나선 후, 청랑회의 은거지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과 첫인상을 담은 제1부 제2장을 작성하겠습니다.

제2장: 청랑(靑狼)의 숨결

여인은 한마디 말도 없이 앞서 걸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놀랍도록 가볍고 빨랐다. 이선우는 필사적으로 그 뒤를 따랐으나,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금세 뒤처지기 일쑤였다. 슬픔과 분노, 그리고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밤새 도망쳐 온 소년의 몸은 이미 천근만근 무거웠다. 여인은 가끔씩 뒤를 돌아 선우의 상태를 확인하는 듯했지만, 그 차가운 눈빛에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치 밤의 장막에 몸을 숨긴 유령처럼 서울의 뒷골목과 인적이 끊긴 강변도로를 따라 움직였다. 여인은 도시의 지리에 매우 밝은 듯, 감시 카메라나 순찰 초소를 귀신같이 피해 다녔다. 몇 번인가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을 때, 선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여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 도시는 그저 통과해야 할 장애물에 불과한 듯 보였다.

밤이 깊어갈수록 도시는 멀어졌고, 산 그림자는 짙어졌다. 그들은 인적이 드문 국도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낡은 트럭의 짐칸에 몸을 실었다. 트럭은 헤드라이트 불빛조차 희미하게 가린 채,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과 산길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덜컹거리는 트럭 안에서 선우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꿈결 속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고, 차가운 목걸이의 감촉이 그를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자신을 구해준 이 여인은 누구일까. 청랑(靑狼)? 노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그 이름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의문은 꼬리를 물었지만, 차마 입을 열어 물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새벽녘이 가까워 올 무렵, 트럭은 깊은 산중턱에서 멈춰 섰다. 여인은 선우를 데리고 내려, 다시 험준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달빛조차 희미해진 숲길이었다. 발밑에서는 마른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고,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새벽 공기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선우는 몇 번이나 넘어지고 숨을 헐떡였지만, 그때마다 여인은 말없이 기다려주거나, 때로는 손목을 잡아 이끌어주기도 했다. 그 손길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놓치고 싶지 않은 강인함이 느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산길을 헤치고 나아가자, 거짓말처럼 시야가 트이며 오래된 산사(山寺)의 모습이 드러났다. 설악산(雪嶽山) 깊은 자락, 속세와는 완전히 격리된 듯한 곳에 자리한 고찰(古刹)이었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뎌온 듯한 목조 건물들은 퇴색되어 있었으나, 그 기둥과 처마 하나하나에는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위엄이 서려 있었다. 이곳이 청랑회의 은신처인가? 선우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사찰 입구에는 '청랑사(靑狼寺)'라는 낡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사찰 문 앞을 지키고 선 문지기인 듯한 노승(老僧)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여인에게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으나, 선우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여인이 노승에게 무어라 짧게 속삭이자, 노승은 이내 길을 비켜주었다.

사찰 내부는 고요하고 정갈했다.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승려 복장의 사람들이 마당을 쓸거나 묵묵히 수련에 정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선우는 이곳이 평범한 사찰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곳은 속세를 등진 무예가들의 은신처, 바로 강호(江湖)의 한 자락인 것이다.

마침내 그들을 맞이한 것은 대웅전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백발의 노인이었다. 학처럼 마른 체구에 푸른 승복을 걸친 노인은, 그러나 형형한 눈빛만은 젊은이 못지않게 빛나고 있었다. 여인은 노인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최 장로님, 데려왔습니다."

최 장로라 불린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우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 시선은 따스하면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깊었다. 선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네가... 진석(鎭錫)의 아들, 선우로구나."

최 장로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는 깊은 연륜과 슬픔이 배어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듣는 순간, 선우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들은 아버지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도 알고 있을 터였다.

"어서 안으로 들거라. 많이 지쳤을 테지."

최 장로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선우를 안쪽의 객사(客舍)로 안내했다. 객사는 비록 소박했으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따뜻한 물과 간단한 요깃거리도 준비되어 있었다. 선우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온기를 느끼며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여인은 어느새인가 말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최 장로는 선우에게 우선 쉬라고 말하며 조용히 객사를 나섰다. 낯선 방의 싸늘한 공기 속에서 선우는 품 안의 목걸이를 다시 한번 움켜쥐었다. 늑대 문양이 새겨진 차가운 금속의 감촉. 어머니의 피, 아버지의 이름, 그리고 정체 모를 이 사찰과 사람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그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렸다는 것.

창밖으로는 설악의 험준한 산세가 새벽 안개 속에 희미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알게 될까. 선우는 지친 몸을 이불 속으로 누이며, 깊고 혼란스러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새로운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선우가 청랑사에 머물며 진실을 마주하고 수련을 시작하는 제1부 제3장을 작성하겠습니다.

제3장: 검을 잡다

깊은 산사의 새벽 예불 소리가 고요함을 가르며 선우의 잠을 깨웠다. 낯선 방의 싸늘한 공기와 창호지 너머로 스며드는 희미한 여명. 꿈결 같았던 지난밤의 일들이 무겁게 현실로 다가왔다. 어머니의 주검, 늑대 문양 목걸이, 그리고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얼음 같은 여인과 노인. 선우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품 안에 간직한 목걸이를 꺼내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정신을 번쩍 뜨이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 장로가 그를 찾아왔다. 그는 선우를 자신의 거처인 듯한 소박한 암자로 데려갔다. 은은한 묵향(墨香)이 감도는 방 안에서, 최 장로는 담담하지만 무거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부친 이진석은... 우리 청랑회(靑狼會)의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단순히 무예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 의기(義氣)와 지혜가 깊어 모두의 신망을 받았지. 그는... 언젠가 이 늙은이의 뒤를 이어 청랑회를 이끌 재목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최 장로의 눈빛이 먼 곳을 향했다. 아련한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하지만 시대가 그를 평온히 놓아두지 않았다. 너의 부친은 우연한 기회에 이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비밀, 우리가 '사직의 징표(社稷之證)'라 부르는 것의 실마리를 손에 넣게 되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나라를 위해 스러져간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담긴 숨겨진 자금의 행방과, 해방 후에도 여전히 권력의 중심부에 남아 민족을 좀먹는 친일 잔재 세력의 명단이 담긴 기록이었다."

선우는 숨을 삼켰다. 아버지가 그런 엄청난 비밀을...

"너의 아버지는 그 징표를 세상에 드러내어 정의를 바로 세우려 하셨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감지한 자들이 있었지. 바로 현 정권의 비호 아래 암약하는 흑룡단(黑龍團)... 그 수괴인 차지철이 보낸 자객들에게 비명횡사(非命橫死) 하신 게야. 공식적으로는 사고사로 처리되었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최 장로는 선우가 지니고 있던 늑대 목걸이를 가리켰다. "이 목걸이는 단순한 유품이 아니다. 그것은 '사직의 징표'가 숨겨진 곳을 여는 마지막 열쇠의 일부이자, 청랑회 후예임을 증명하는 신표(信標)다. 너의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것을 지켜내셨고, 우리가 찾아내어 너에게 전해지도록 안배해 놓으셨던 게지."

선우의 눈에서는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 어머니의 희생, 그리고 자신에게 지워진 운명의 무게.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의 가슴을 아프게 짓눌렀다.

"흑룡단 놈들... 차지철...!" 선우의 목소리에는 깊은 증오가 서려 있었다.

최 장로는 그런 선우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복수심은 검을 날카롭게 하지만, 또한 검객의 눈을 멀게도 한다. 네 아버지가 진정 원했던 것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이 땅에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었음을 잊지 말거라."

그는 선우에게 선택지를 주었다. 이곳에 남아 청랑회의 무예를 익히고 아버지의 유지를 이을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잊고 속세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살 것인가. 물론, 흑룡단이 그를 가만둘 리 없다는 암시도 덧붙였다.

선우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의 눈빛에는 이미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길을, 어머니의 원한을... 이 두 손으로 반드시 갚고, 그릇된 것을 바로잡겠습니다. 부디 저를 받아주십시오!"

최 장로는 말없이 선우의 눈을 응시했다. 그 깊은 눈 속에서 아들의 모습 너머, 젊은 시절 의기에 불타던 친구 이진석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허나 이 길은 멀고 험할 것이다. 피와 땀, 그리고 눈물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게야. 각오는 되었느냐?"

"각오했습니다!"

그날부터 이선우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최 장로는 직접적인 무예 전수보다는 정신적인 지주이자 길잡이 역할을 했고, 실제적인 기초 수련은 윤채영이 맡았다. 채영은 선우를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첫날부터 혹독한 하체 단련(마보 자세)과 호흡법(화랑호흡법), 그리고 기초 체력 단련이 이어졌다.

"다리가 떨리는가? 정신력으로 버텨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가? 호흡으로 다스려라! 무릇 무예의 시작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윤채영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선우는 그녀의 냉정함에 때로는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녀의 시범 동작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완벽함과 강인함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년의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거워졌고, 온몸의 근육은 비명을 질렀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땀은 비 오듯 흘러내렸다.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과 아버지의 이름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수련은 육체적인 고통뿐만이 아니었다. 밤이 되면 복수심과 조급함이 마음속의 마(魔)처럼 피어올라 그를 괴롭혔다. 빨리 강해져서 원수들을 베어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최 장로는 그런 선우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가끔씩 넌지시 충고를 건넸다.

"샘물은 고요해야 맑게 비추는 법이다. 너의 마음이 분노로 들끓는 한, 검의 진정한 길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루는 고된 수련 끝에 탈진하여 쓰러진 선우에게, 채영이 말없이 다가와 차가운 물수건을 건네주었다. 무심한 듯한 행동이었지만, 선우는 그 안에서 희미한 온기를 느꼈다. 그녀 역시 말은 없었지만, 선우의 투지와 잠재력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달빛 아래, 선우는 홀로 남아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마보 자세를 잡았다. 아직은 서툴고 미약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꺾이지 않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품 안의 목걸이가 그의 결의에 응답하듯 희미하게 빛나는 듯했다. 청랑의 후예, 이선우의 길은 이제 막 첫걸음을 떼었을 뿐이었다. 고되고 외로운,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늑대의 길이.

알겠습니다. 이선우가 청랑사에 적응하며 수련에 진전을 보이고,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세상의 이면을 더 깊이 알아가는 제1부 제4장을 작성하겠습니다.

제4장: 강호(江湖)의 그림자

해가 바뀌어 매화가 피고 질 무렵, 선우의 손에는 목검(木劍)이 들려 있었다. 지난 몇 달간의 혹독한 기초 수련은 소년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의 눈빛에는 이전의 불안함 대신 조금씩 자신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윤채영의 눈에는 부족함 투성이였지만, 이제는 제법 청랑검법(靑狼劍法)의 기본 초식(招式)을 흉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을 너무 굳게 쥐었네. 손목에 힘을 빼고, 허리의 회전으로 검을 이끌어야지."

함께 목검 수련을 하던 사형(師兄) 박진수(朴鎭洙)가 부드럽게 선우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진수는 선우보다 대여섯 살 위로, 과묵하지만 따뜻한 성품을 지닌 청년이었다. 그는 선우에게 종종 아버지 이진석의 젊은 시절 이야기나 청랑회의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주었다.

"채영 사매(師妹)가 엄한 것은 자네를 미워해서가 아닐세. 그녀 역시 과거에 큰 아픔을 겪었기에... 무예의 길에서 한순간의 방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지." 진수는 말을 아꼈지만, 그 속뜻을 선우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수련은 여전히 고되었다. 특히 대련(對練) 시간에는 다른 사형제들과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그중에서도 강민호(姜珉浩)라는 동갑내기 수련생은 유독 선우에게 경쟁심을 불태웠다. 그는 대련 중에 종종 필요 이상으로 거칠게 선우를 몰아붙이곤 했다.

"흥, 고작 몇 달 수련한 풋내기가 감히 검을 논하는가? 네놈이 의지할 것은 죽은 네 아비의 이름뿐이겠지!"

도발적인 언사에 선우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다. 순간 검을 휘둘러 저 오만한 얼굴을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그는 최 장로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간신히 분노를 억눌렀다. '마음이 분노로 들끓는 한, 검의 진정한 길은 보이지 않는다.' 선우는 묵묵히 목검을 고쳐 잡고 다시 자세를 취했다. 그런 선우의 모습을 민호는 더욱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최 장로의 거처에 불려 간 선우는 무거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외부와 연락을 주고받는 청랑회 연락원을 통해 바깥세상의 소식이 들어온 것이었다.

최 장로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드리워졌다. "바깥세상은...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구나. 유신(維新) 철권 통치는 날로 포악해지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특히 흑룡단 놈들의 발호(跋扈)가 극심하여, 조금이라도 정권에 비판적인 기색을 보이는 이들은 가차없이 끌려가 고초를 겪는다고 한다."

그는 선우에게 청랑회가 왜 이렇게 깊은 산중에 숨어 지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설명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저 거대한 악(惡)에 정면으로 맞설 수 없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힘을 기르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너의 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켜낸 '사직의 징표'는 바로 그 '때'를 위한 마지막 불씨일지도 모른다."

선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력감과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그저 이곳에 숨어 수련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저 악당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날 밤, 선우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수련장으로 나왔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달빛 아래 홀로 목검을 휘둘렀다. 배운 초식들을 반복했지만, 마음속의 번뇌 때문인지 검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을 헤맬 뿐이었다. 그때였다.

"검 끝이 아니라, 마음으로 베는 것이다."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어느새 다가온 윤채영이 선우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선우의 손에 들린 목검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그녀의 손길이 스친 자리가 이상하게 뜨겁게 느껴졌다.

"잡념이 많으면 검이 무뎌지는 법. 무엇이 너를 이토록 흔드는 것이냐?"

선우는 처음으로 채영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조금 털어놓았다. 바깥세상의 소식, 흑룡단에 대한 분노,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답답함. 채영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동요하는 듯한 빛이 스치는 것을 선우는 놓치지 않았다.

"분노는 때로 강한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길에 삼켜지면 결국 자신마저 태우게 되지. 네 검은 아직 설익었지만, 그 안에 깃든 의기(義氣)는 올곧다. 그것을 잃지 마라."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다시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선우는 잠시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은 짧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속의 폭풍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마음으로 베는 것', '올곧은 의기'. 그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으며 다시 목검을 잡았다. 이번에는 검 끝에 실린 마음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았다.

잠 못 이루는 밤, 선우는 깨달았다. 이 길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엄격하지만 올곧은 스승이 있고,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의지가 되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긴 유산과 의지가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흑룡단과 차지철, 그리고 그 배후의 거대한 권력은 여전히 넘기 힘든 벽처럼 느껴졌지만, 이제 선우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함께 작은 희망의 불씨도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외로운 도망자가 아니었다. 청랑회의 일원으로서, 강호의 그림자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 나서는 구도자(求道者)였다.

알겠습니다. 이선우가 청랑사에서의 수련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임무를 위해 서울로 떠나는 과정을 담은 제1부 제6장을 작성하겠습니다. 이 장은 제1부의 마지막 장으로서 제2부 '서울 잠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하겠습니다.

제6장: 하산(下山)

가을이 깊어지고 설악의 단풍이 마지막 절정을 뽐내던 무렵, 선우의 손에 들린 검은 더 이상 단순한 수련 도구가 아니었다. 차가운 강철의 감촉이 이제는 제법 손에 익었고, 그의 검 끝에는 미약하나마 스스로의 의지(意志)가 실리기 시작했다. 청랑검법의 변화무쌍함과 화랑심결의 깊은 호흡은 아직 요원했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흑룡단의 하급 요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던 어제의 소년이 아니었다.

진수 사형과의 대련에서도 이제는 제법 합(合)을 겨룰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그의 눈빛에서 이전의 불안함과 조급함 대신 침착함과 결의가 읽히기 시작했다. 그의 성장을 묵묵히 지켜보던 최 장로는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선우야, 잠시 내 처소로 오너라."

최 장로의 방에 들어선 선우는 어딘지 모르게 평소와 다른 엄숙한 분위기를 느꼈다. 최 장로는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잘 벼려진 한 자루의 검(劍)이 들어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날카로운 기상이 서려 있는, 실전용 진검(眞劍)이었다.

"이것은 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사용하던 검이다. 이제 네가 이 검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

선우는 떨리는 손으로 검을 받아들었다. 손잡이에 감긴 가죽의 감촉에서 아버지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했다. 검을 뽑아들자, 서늘한 검날이 등불 아래 희미한 빛을 발했다. 이 검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그의 유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최 장로는 이어서 본론을 꺼냈다. "지난번 이야기했던 '사직의 징표'의 나머지 절반에 대한 단서가 잡혔다. 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으로 추정되는... 서울 종로의 오래된 서점 '일신서림(日新書林)'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며 기다릴 수만은 없다. 이제 네가 직접 나서야 할 때다."

서울. 그곳은 어머니가 비명횡사한 비극의 장소이자, 흑룡단과 차지철이 독수리처럼 버티고 있는 적지(敵地)였다.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선우의 눈빛이 단호하게 빛났다.

"알겠습니다, 장로님. 제가 가겠습니다."

"좋다. 허나 명심하거라. 서울은 이곳 산중과는 다르다. 흑룡단의 눈과 귀는 곳곳에 뻗어 있다. 절대로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며, 너의 정체를 숨기고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네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일신서림'을 조사하여 '징표'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위험하다 판단되면 즉시 이곳으로 연락하고 몸을 피해야 한다."

최 장로는 선우에게 몇 가지 연락 방법과 비상시 행동 요령, 그리고 서울 시내에 숨어있는 청랑회의 연락책(매우 소수이며 점조직 형태)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의 당부에는 노스승의 염려와 함께, 제자를 미지의 위험 속으로 떠나보내는 비장함이 묻어 있었다.

이튿날 새벽, 선우는 하산을 준비했다. 지난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정들었던 청랑사와의 작별이었다. 진수 사형은 밤새 준비한 듯한 작은 약낭(藥囊)과 변장에 필요한 낡은 옷가지를 건네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사제! 돌아오면 술이나 한잔 기울이자꾸나."

쌀쌀맞던 강민호조차 이번에는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는 멀찍이 서서 선우를 바라보더니, 마지못한 듯 한마디 툭 던졌다. "객사(客死)하지는 마라." 그것이 그 나름의 작별 인사였다.

사찰 문 앞에서 선우는 최 장로에게 큰절을 올렸다. "장로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거라. 그리고... 네 아버지처럼, 의(義)를 잃지 말거라." 최 장로의 목소리가 낮게 잠겨 있었다.

선우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은 윤채영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손에는 작은 비단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서울의 밤은 이곳보다 훨씬 차갑고 어둡다. 섣불리 검을 뽑지 마라. 때로는 검보다 빠른 발이, 날카로운 검기(劍氣)보다 숨죽인 호흡이 더 강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녀는 비단 주머니를 선우에게 건넸다. "이것은... 급할 때 쓰거라. 안에 든 신호탄은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으니 명심하고."

주머니 안에는 몇 가지 약초와 함께, 비상 신호용으로 보이는 작은 폭죽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선우는 말없이 주머니를 받아 품 안에 넣었다. "고맙다, 사저(師姐)."

채영은 대답 대신, 그의 눈을 잠시 깊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수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으나,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먼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선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소년은 마지막으로 청랑사가 숨어있는 설악의 준봉(峻峰)들을 눈에 담았다. 지난 시간 동안 자신을 품어주고 단련시켜준 고마운 안식처였다. 그는 사찰의 문지방을 향해 다시 한번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거대한 용광로 같은 도시, 회색빛 욕망과 음모가 들끓는 서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산길을 내려오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등에는 아버지의 검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길 잃은 늑대의 그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비록 어리고 미숙하지만 분명한 목표를 지닌 한 마리 푸른 늑대의 눈빛이었다.

<제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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