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오류는 나의 힘! - 에피소드 1
시스템 오류는 나의 힘!
에피소드 1: 각성, 오류코드 404
2025년 4월 9일 수요일, 밤 11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후미진 골목길에 자리한 CU 프렌드 편의점의 불빛만이 어둠을 외롭게 밀어내고 있었다. 카운터 안, 스물셋의 김현우는 낡은 스마트폰 계산기 앱을 멍하니 바라봤다.
‘월세 45만 원, 학자금 대출 원리금 20만 원, 공과금 대충 10만 원….’
이번 달 알바비에서 고정 지출을 빼고 나니, 남는 금액은 다음 달 월급날까지 버티기엔 처참한 수준이었다.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현우는 손에 들고 있던 유통기한 마크가 어제 날짜로 찍힌 삼각김밥을 입 안에 욱여넣었다. 퍽퍽한 밥알과 속 재료의 희미한 맛이 혀를 맴돌았다. 배를 채운다는 목적 외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식사였다.
딸랑-
그때,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며 40대 후반의 점장, 박수철이 들어섰다. 기름진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매대 끝 음료수 칸으로 직행했다.
“야, 김현우! 너 이거 똑바로 안 해놔? 손님들이 보기 불편하다고 몇 번을 말해!”
점장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칼같이 각 맞춰 진열된 캔 음료들이었다. 현우는 어제 자신이 폐기 상품을 정리하며 먼지 하나 없이 닦고 각도까지 맞춰 놓았던 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어제 내가 완벽하게 맞춰 놓은 건데… 또 뭘로 트집을 잡으려고.’
속으로 삭이며 현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점장님. 바로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쯧쯧,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뭘 믿고 맡기겠냐.”
박수철은 혀를 차며 계산대 안쪽으로 들어와 포스기를 뒤적였다. 현우는 묵묵히 음료수 칸으로 향하는 척하며 흘깃, 벽걸이 TV를 바라봤다.
[속보] 마포구 OOO동 인근, 게이트 발생 예비 경보 발령…
화면 하단에는 익숙한 자막이 흐릿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대균열(The Great Rift)’ 이후 10년, 이런 뉴스는 이제 드물지 않았다.
‘마포구면 여기서 꽤 먼데… 그래도.’
며칠 전, 바로 옆 동네에서 작은 균열(Crack)이 열려 소동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별일 없이 지나갔지만,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이트든 균열이든,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였다.
그때였다.
팟-!
편의점 내부의 낡은 형광등 몇 개가 동시에 짧게 깜빡거렸다. 동시에 TV 화면에도 순간적으로 지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끼었다.
“어?”
현우가 무심코 천장을 올려다보는 바로 그 찰나였다.
끼이이이익-!
단순한 금속 마찰음과는 차원이 다른, 날카롭고 불안정한 소리가 편의점 바로 옆, 폐자재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 터져 나왔다. 밤의 정적을 잔인하게 찢는 소리였다.
“꺄악!”
“뭐, 뭐야!”
때마침 골목을 지나던 행인 한두 명의 비명 소리가 뒤따랐다. 현우는 저도 모르게 카운터에서 뛰쳐나와 유리문 너머 골목 쪽을 바라봤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 허공에, 검은 균열이 아가리처럼 벌어져 있었다. 성인 남성의 상반신만 한 크기의 불길한 균열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어둡고 일렁이는 내부에서는 무언가 꾸물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균열 속에서 그것이 기어 나왔다.
녹색의, 역겨운 점액질로 뒤덮인 반투명한 몸체. 마치 도시 하수구의 모든 오물을 한데 뭉쳐 놓은 듯한 혐오스러운 모습. ‘하수구 슬라임’이라고 불리는 최하급 몬스터였다.
슬라임은 느릿느릿, 하지만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편의점 입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나온 바닥에는 끈적이는 녹색 점액이 번들거렸다.
쿵-
슬라임의 몸체가 편의점 자동문에 부딪히며 끈적이는 점액을 유리 표면에 묻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크윽…!”
현우는 극심한 두통과 함께 온몸의 신경 세포 하나하나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격렬한 감각에 휩싸였다. 눈앞이 아찔하게 점멸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한 것을 간신히 카운터에 기대 버텨냈다.
그리고 그의 의식 속으로, 기계적인 음성이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각성 조건 충족. ‘플레이어’ 김현우 님의 시스템 인터페이스를 활성화합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현우의 눈앞에는 반투명한 푸른색 시스템 창이 홀로그램처럼 떠 있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김현우
레벨: ???
상태: ???
HP: Null
MP: Null
[스탯]
힘: ???
민첩: ???
체력: ???
지능: ???
마력: [Error 404]
[스킬]
??? (Null)
??? (Null)
[Error 404]
뉴스에서, 인터넷에서, 수없이 보고 들었던 각성자의 상징, 시스템 인터페이스였다.
‘이거… 진짜 각성이라고? 내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꽉 막힌 듯 답답했던 현실에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인생 역전?’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상태창을 자세히 훑어보던 현우의 표정이, 그러나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리고 이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름 ‘김현우’를 제외한 모든 정보 칸이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라도 먹은 것처럼 의미 불명의 기호와 오류 코드로 도배되어 있었다. 레벨도, 상태도,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스탯 수치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HP와 MP는 아예 ‘Null’ 값이었고, 마력 항목은 대놓고 ‘Error 404’를 띄우고 있었다. 스킬 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희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정상적인 시스템 창이 아니었다. 명백한 ‘오류’였다.
“이럴 수가….”
현우의 입에서 허탈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내 시스템만… 고장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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