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오류는 나의 힘! - 에피소드 2

 

시스템 오류는 나의 힘!

에피소드 2: E급 헌터와 이상한 잔상

“내 시스템만… 고장난 건가?”

김현우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오류 코드 투성이의 시스템 창을 보며 망연자실 중얼거렸다. 방금 전까지 온몸을 휘감았던 각성의 격렬한 감각은 사라지고, 차가운 절망감만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인생 역전은커녕, 시작부터 불량품을 뽑아버린 기분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편의점 자동문 유리에 묻은 녹색 점액질만이 방금 전 일어난 비현실적인 소동의 유일한 증거처럼 남아 있었다.

그때, 골목 입구 쪽에서 거친 발소리와 함께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이다! 신고받고 왔습니다!”

“웬 소란이야, 또 잡몹이냐?”

둔탁한 발소리와 함께 두 명의 남자가 편의점 앞 골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의 행색은 현우가 뉴스 화면 너머로 보던 ‘멋진’ 헌터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명은 낡은 작업복 차림에 녹슨 쇠 파이프를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가죽 재킷 아래 번들거리는 단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 경험 많은 베테랑은 아닌 듯했다.

그들은 바닥에 남은 슬라임의 점액 흔적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에잇, 겨우 슬라임이냐? 신고는 누가 이렇게 요란하게 했어?”

“보나 마나 행인이겠지. 빨리 처리하고 담배나 피우자. 오늘 벌써 세 번째 호출이라고.”

쇠 파이프를 든 남자가 투덜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슬라임이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니, 애초에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들에게 이 상황은 귀찮은 잡무 처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했다.

“어이쿠, 여긴 또 왜 이래?”

단검을 든 남자가 편의점 자동문에 묻은 점액을 발견하고 인상을 썼다. 그리고 그제야 카운터 근처에 멍하니 서 있는 현우를 발견했다.

“어이, 학생. 저 슬라임 어디 갔어? 네가 처리한 건 아닐 테고.”

“저… 저쪽으로….”

현우가 얼떨결에 골목 안쪽을 가리켰지만, 헌터들은 그 방향을 대충 훑어볼 뿐이었다.

“에이씨, 도망갔나? 귀찮게 됐네.”

“야, 그냥 대충 둘러보고 철수하자. 슬라임 한 마리 가지고 뭘 더 해.”

쇠 파이프 남자가 귀찮다는 듯 파이프를 다시 어깨에 걸쳤다. 그들의 눈에는 사라진 슬라임보다, 남은 점액질을 치워야 할지도 모르는 귀찮음이 더 크게 다가오는 듯했다.

현우는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것이 ‘진짜’ 헌터의 모습인가. 물론 저들은 고작 E급, 최하위 등급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슬라임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물론 결과적으로는 사라졌지만) 귀찮아하는 모습은 현우가 막연히 상상했던 헌터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저런 사람들조차… 나보다는 훨씬 낫겠지.’

적어도 그들에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창과 스탯, 그리고 스킬이 있을 터였다. 자신처럼 오류 코드만 가득한 불량품이 아니라. 다시금 깊은 무력감이 현우를 덮쳤다.

“에이, 퉷! 보상 신청해 봐야 담뱃값도 안 나오겠네.”

쇠 파이프 남자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가자, 가. 신고 처리나 빨리 끝내고 쉬자.”

두 명의 E급 헌터는 그렇게 왔던 것처럼 허무하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들이 남긴 것은 바닥의 침 자국과 현우의 더 깊어진 절망감뿐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현우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잠시나마 품었던 헛된 기대가 처참하게 부서진 자리에 남은 것은 차가운 현실뿐이었다.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슬라임이 마지막으로 꿈틀거렸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바닥에는 희미한 녹색 얼룩만이 남아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여전히 떠 있는, 오류로 가득한 시스템 창을 노려보았다. 차라리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희망 고문도 이런 식이라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때였다.

“…?”

현우의 시야 가장자리, 마치 모니터의 잔상처럼, 희미하지만 분명한 형태의 글자들이 나타났다 빠르게 스르륵 사라졌다. 너무나 순식간이라 미처 자세히 읽을 틈도 없었다.

하지만 뇌리에는 방금 본 정보가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개체명: 하수구 슬라임 (소멸)]

[주요 약점: 점액질 내부의 ‘오염된 핵’ (물리 충격 시 방어 무시, 추가 부식 피해)]

[드랍 정보: 점액 주머니(하급) - 5% 확률]

“어…?”

현우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으며 눈을 비볐다. 방금 그건 뭐였지? 자신의 시스템 창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정보였다. 마치 게임 공략 정보처럼, 대상의 약점과 드랍 아이템까지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응시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여전히 텅 빈 골목길과 자신의 눈앞에 떠 있는 [Error 404] 뿐이었다.

‘환각인가?’

각성 과정에서 뇌에 무리가 가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너무 간절히 바라던 나머지 헛것을 본 건가?

하지만 방금 본 정보는 너무나 생생하고 구체적이었다. ‘오염된 핵’이라는 약점, ‘점액 주머니’라는 드랍템 정보까지. 단순한 환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상세했다.

현우는 다시 자신의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여전히 변화는 없었다. 이름 외에는 온통 깨진 글자와 오류 코드뿐.

‘대체… 방금 그건 뭐였지?’

강렬한 혼란과 함께 알 수 없는 의문이 그의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고장 난 시스템과는 별개로, 자신에게 무언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잘못 본 건가…?”

현우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방금 스쳐 지나간 그 이상한 잔상이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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