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방문>

 <현장 방문>

오후 2시,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 구청 문화산업과 소속이라는 김 주무관이 강서연의 스튜디오 문을 두드렸다. 그는 서연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약간은 닳아 보이는 깨끗한 공무원 복장에 서류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강서연 작가님. 김민수 주무관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을지로 영 아티스트 지원 사업’ 관련 현장 실사 차 방문했습니다.”

김 주무관은 악수를 청하며 환하게 웃었지만, 그의 눈은 이미 스튜디오 내부를 빠르게 훑고 있었다. 서연은 멋쩍게 웃으며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녀의 스튜디오는 깔끔했지만, 작업 중이던 금속 조각들과 공구들이 여기저기 놓여 어수선한 구석도 있었다.

“아이고, 작가님 스튜디오가 아주… 창의적인 분위기네요. 허허.” 김 주무관은 서류 가방에서 체크리스트처럼 보이는 종이를 꺼내 들었다. “자, 그럼 몇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우선, 이 공간이 예술 창작 활동 목적으로 정식 임대 계약된 것이 맞으시죠? 사업자 등록은 되어 있으시고요?”

“네, 네. 다 되어 있어요.” 서연은 조금 당황하며 대답했다.

김 주무관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벽에 걸린 서연의 금속 설치 작품(그녀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실험적으로 만든)을 가리켰다.

“이 작품이 대표작이신가 보군요. 음… 소재가 독특합니다. 혹시 ‘업사이클링 아트’인가요? 요즘 폐자원을 활용한 예술이 ESG 경영과 맞물려 아주 유망합니다.”

“아… 그건 그냥 철판인데요. 폐자원은 아니고요.”

“아, 그렇습니까? 허허. 그럼 이 작품의 주제는… 혹시 ‘도시 재생’ 뭐 이런 건가요? 을지로의 역사성을 담은…”

“그… 도시의 소외와 개인의 불안감을 표현한 건데요.” 서연은 우물쭈물 설명했지만, 김 주무관은 이미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 듯했다.

“작가님의 주요 수입원은 작품 판매이신가요? 아니면 클래스 운영이나… 혹시 온라인 판매 플랫폼도 활용하고 계신지? 요즘은 스마트 스토어가…”

“주로 커미션 작업이나… 가끔 갤러리 통해서 판매하고요. 온라인은 아직…”

“커미션 작업이요? 아, 그럼 아까 입구에서 본 그… 카페에 들어가는 쟁반 같은 거 말씀이시군요? 그런 생활 소품 디자인도 하시고요?” 김 주무관의 목소리에는 미묘하게 실망한 듯한, 혹은 ‘예술가’라기보다는 ‘기술자’를 대하는 듯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서연은 울컥했지만 애써 참았다. “네, 그런 작업도 합니다만, 제 주된 작업은…”

“좋습니다. 좋습니다. 다각적인 수익 모델 구축이 중요하죠. 자, 그럼 작가님의 향후 3년간 활동 계획과 목표 매출액에 대해 간략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저희 지원 사업 심사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거든요. 특히 ‘을지로 로컬 콘텐츠’와의 시너지 효과 창출 방안이 있다면 가산점이…”

서연은 잠시 말을 잃었다. 목표 매출액? 시너지 효과? 그녀는 그저 이 작은 스튜디오에서 자신만의 작업을 계속하고 싶을 뿐인데, 이 사람은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창밖을 잠시 바라보았다. 길 건너편, 낡은 조명 가게 앞에서 주인이 멍하니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저 사람에게도 ‘향후 3년간 활동 계획’ 같은 걸 물어볼까.

“저… 저는 그냥… 좋은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여기서요.” 서연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김 주무관은 그녀의 말을 받아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좋은 작업’. 아주 중요한 목표죠. 창의적인 열정이 느껴집니다. 혹시 작가님 작품의 ‘스토리텔링’ 전략이나 ‘브랜딩’ 계획 같은 건 있으신가요? 요즘은 작품 자체만큼이나 스토리가 중요해서…”

대화는 계속 겉돌았다. 서연은 점점 지쳐갔고, 김 주무관은 여전히 서류상의 빈칸을 채우는 데만 열중하는 듯 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스튜디오 내부 사진 몇 장을 찍고(서연의 작품보다는 ‘인더스트리얼한 공간 분위기’에 더 초점을 맞추는 듯했다), 서류 가방을 챙겨 들었다.

“네, 오늘 현장 방문은 잘 마쳤습니다. 작가님의 열정과 을지로의 ‘힙’한 감성이 잘 결합된다면, 우리 구의 ‘창의 생태계’ 조성에 큰 기여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사 결과는 추후 개별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김 주무관은 다시 한번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고는 스튜디오를 나섰다. ‘창의 생태계’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혼자 남은 서연은 한참 동안 작업대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참을 수 없다는 듯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은 이내 헛웃음으로, 거의 흐느낌처럼 변해갔다. 그녀는 작업대 위에 놓인, 형태가 잡히다 만 거친 쇠붙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망치를 들어, 이유 없이 그것을 힘껏 내리치기 시작했다. 탕, 탕, 탕! 쇳덩이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텅 빈 스튜디오 안에 울려 퍼졌다. 그녀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어쩌면 저 소리였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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