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오류는 나의 힘! - 에피소드 3

 

시스템 오류는 나의 힘!

에피소드 3: F급이어도 괜찮아?

며칠이 흘렀다. 김현우는 편의점 야간 알바를 기계적으로 계속했지만, 머릿속은 그날의 일로 복잡했다. 오류투성이 시스템 창은 여전했고, 각성했다는 실감보다는 불량품을 뽑았다는 절망감만 깊어졌다.

하지만 딱 하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주요 약점: 점액질 내부의 ‘오염된 핵’]’

‘[드랍 정보: 점액 주머니(하급) - 5% 확률]’

슬라임이 사라진 자리에 나타났던 그 이상한 잔상. 환각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선명하고 구체적인 정보였다. 어쩌면… 시스템 오류와는 별개로, 자신에게 무언가 다른 능력이 생긴 건 아닐까? 아니면, 혹시 시스템 오류가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혹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 밑져야 본전이다. 공식적으로 확인이라도 해보자.

현우는 결국,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헌터 협회 관악 지부’ 건물 앞에 섰다. 깔끔하지만 다소 위압적인 현대식 건물이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자동문을 통과했다.

로비는 예상대로 분주했다. 각성 절차를 밟으러 온 듯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표정의 젊은이들, 장비를 점검하며 동료와 떠드는 현직 헌터들, 행정 업무를 보러 온 시민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에서 현우는 잠시 이질감을 느꼈다.

‘각성자 등록’이라고 쓰인 창구 앞에 줄을 섰다. 앞사람들의 대화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난 최소 C급은 나올 것 같아. 어제 꿈자리가 좋았거든.”

“아, 떨린다… F급만 아니면 좋겠는데.”

다들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었다. 자신처럼 오류투성이 시스템을 가진 사람은 없겠지. 현우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다음 분.”

드디어 현우의 차례였다. 창구 너머에는 서른 살 정도로 보이는 남성 직원이 서류를 넘기며 무심하게 말했다. 현우는 신분증을 내밀고 간단한 인적 사항 확인 절차를 거쳤다.

“마나 측정실은 저쪽입니다. 안내받고 측정 후에 다시 이쪽으로 오세요.”

직원이 손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마나 측정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현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측정실로 향했다.

내부는 생각보다 단출했다. 방 중앙에 놓인 은색의 매끈한 측정기가 전부였다. 측정기 앞에는 또 다른 직원이 서 있었다.

“이 위에 손바닥을 올려주세요.”

현우는 떨리는 손을 들어 차가운 금속판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위이잉-

측정기가 낮은 소음과 함께 작동하기 시작했다. 기계 표면의 디스플레이 창에 푸른빛이 들어오며 복잡한 수치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나 반응 확인 중…]

[잠재 마력 스캔…]

[측정값 불안정… 재측정 시도…]

수치는 미친 듯이 요동쳤다. 10, 50, 5, 200, 0… 종잡을 수 없는 숫자들이 명멸하다가, 이내 모든 숫자가 사라지고 붉은색 경고 문구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측정 불가 (F)]

삐- 하는 단조로운 경고음과 함께 최종 판정이 내려졌다. 측정 불가. 이는 사실상 마력이 거의 없거나, 시스템이 정상적인 측정을 거부할 정도로 불안정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헌터 협회의 등급 기준상, 이는 곧 최하위 등급인 F급을 의미했다.

측정실 직원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결과를 기록지에 적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까 그 창구로 가시면 됩니다.”

현우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비틀거리듯 측정실을 나왔다. 다시 등록 창구로 돌아가자, 아까 그 직원이 현우의 기록지를 받아들고는 역시나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현우 씨. 안타깝지만 측정 불가, F급입니다.”

직원은 서류에 F급 도장을 ‘쾅’ 소리가 나게 찍었다. 그 소리가 현우의 심장에 박히는 듯했다.

“기록 보니까… 시스템 오류도 심각하시네요. 코드 404에 Null 값이라… 이 정도면 사실상 시스템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 헌터 활동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습니다. 요즘엔 헌터 보조 인력 지원 프로그램도 있으니 그쪽이나 알아보시는 게…”

직원의 목소리는 멀게만 들렸다. 그는 마치 수백, 수천 번은 반복했을 법한 대사를 기계적으로 읊조릴 뿐이었다.

잠시 후, 직원이 얇은 플라스틱 카드를 내밀었다.

[헌터 라이선스]

이름: 김현우

등급: F

소속: 대한민국 헌터 협회

싸구려 플라스틱 조각처럼 보이는 F급 헌터 라이선스였다. 현우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것이 자신의 현실이었다. 시스템 오류, 그리고 F급. 각성 전과 다를 바 없는, 아니, 어쩌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직원의 마지막 말은 귓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현우는 멍하니 몸을 돌려 협회 건물을 나섰다.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게 느껴졌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알바나 계속하면서 학자금 대출이나 갚아야 하나? 각성자라는 이름만 얻었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F급이라는 낙인만 더해졌을 뿐이다. 깊은 무력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던 현우의 머릿속에, 문득 다시 그 잔상이 스쳐 지나갔다.

[주요 약점: 점액질 내부의 ‘오염된 핵’]

[드랍 정보: 점액 주머니(하급) - 5% 확률]

협회의 공식적인 판정은 ‘F급’, ‘시스템 오류’. 완벽한 실패였다. 하지만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그 정보는 무엇이었을까? 오류 난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명확하고 구체적인 데이터.

‘그건… 정말 뭐였을까?’

짙은 절망 속에서, 풀리지 않는 그 의문만이 현우의 발걸음을 아주 조금, 아주 미미하게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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