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

 <손길>

늦은 밤, ‘대성 정밀’의 형광등 불빛 아래, 심 기사는 작업대 앞에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수십 년은 족히 되었을 법한 낡은 선반(旋盤, Lathe) 기계가 낮은 소음으로 예열되고 있었다. 오늘 그의 과제는 오래된 단골 거래처에서 특별히 주문한, 아주 작은 금속 부품 하나를 깎아내는 일이었다. 도면은 이미 머릿속에 완벽하게 들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손과 기계, 그리고 쇠붙이 사이의 오랜 대화뿐이었다.

그는 먼저 두툼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놀랍도록 섬세한 손길로 금속 봉을 기계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감촉.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기계의 미세한 진동이 작업대를 통해 그의 몸으로 전해져 왔다. 오랜 친구처럼 익숙한 떨림이었다.

첫 번째 공정은 외경(外徑)을 맞추는 일이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핸들을 돌려 절삭 공구를 금속 봉 표면에 밀착시켰다. 치이익-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가늘고 반짝이는 쇳밥이 얇은 실타래처럼 풀려 나오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는 뜨겁게 달궈진 쇠 냄새와 절삭유의 독특한 향이 퍼져나갔다. 그의 눈은 오직 공구의 날 끝과 회전하는 금속 표면이 맞닿는 그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눈금이나 측정기에 의존하기보다, 그는 소리와 진동, 그리고 손끝의 감각으로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며 핸들을 조작했다.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 그의 몸은 기계와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0.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작업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외경 가공이 끝나자, 그는 잠시 기계를 멈추고 가공된 표면을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매끄럽지만 차가운 감촉. 그는 루페(확대경)를 꺼내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흠집 하나까지도 그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만족스러운 듯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다음 공정을 위해 다른 절삭 공구로 교체했다.

이번에는 내경(內徑)을 파내고 홈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그는 더욱 숨을 죽이고 기계의 속도를 조절했다. 쇳밥이 아까보다 더 잘게 부서져 내렸다. 그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혔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그의 온 신경은 오직 손끝과 눈과 귀에 집중되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상념은 잠시 그의 의식 밖으로 밀려났다. 오직 그와 기계, 그리고 쇠붙이만이 존재하는 완전한 몰입의 순간이었다.

가끔 그는 작업대 옆에 놓인 작은 주전자로 절삭유를 뿌려주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그라졌다. 그 모습은 마치 어떤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 작업을 수만 번, 아니 수십만 번 반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허투루 하거나 익숙함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의 손길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응축된 노련함과 초심자의 그것과 같은 신중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공정이 끝났다. 그는 기계를 멈추고, 완성된 작은 부품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정밀한 굴곡과 홈이 파여 있었다. 그는 다시 루페를 꺼내 부품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살폈다. 도면과 정확히 일치했다. 오차는 없었다.

그제야 심 기사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등 뒤에 맺혔던 땀이 식으며 한기가 느껴졌다. 그는 작업대 옆에 놓인 마른 수건으로 이마의 땀과 손의 기름때를 닦아냈다. 완성된 부품을 형광등 불빛 아래 비춰보았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표면이 무심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 작은 쇠붙이 하나를 위해 그는 지난 몇 시간을 오롯이 바쳤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고 쉽게 모든 것을 만들어내지만, 그는 여전히 이 오래되고 느린 방식으로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는 완성된 부품을 부드러운 천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작업대 주변에 흩어진 쇳밥을 빗자루로 쓸어모았다. 낡은 선반 기계는 이제 완전히 소음을 멈추고, 밤의 정적 속에서 다음 작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 기사는 잠시 그 기계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작업장의 전등 스위치를 내렸다. 어둠 속에서, 방금 그가 깎아낸 작은 금속 부품만이 아주 희미하게, 자신만의 빛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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