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의 메아리 (Neon Echoes) Act 4: 미나, 내 불꽃, 내 심연 (Mina, My Flame, My Abyss)
네온의 메아리 (Neon Echoes)
Act 4: 미나, 내 불꽃, 내 심연 (Mina, My Flame, My Abyss)
강물은 흘렀다, 아니, 눈물이었을까, 번들거리는 표면 위로 네온의 부서진 조각들이 떠다니는, 기름띠 같은 강물 위로. 차갑고 축축한 것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빗물인가, 아니면 미나의 손길이 남긴 희미한 감촉인가, 클럽의 열기 속에서 그녀의 손가락이 스쳤던 그 순간처럼, 아니면 어머니의 눈물이었을까, 임플란트가 쑤셔 넣은 기억 속 해커의 피 묻은 손처럼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이. 숨을 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공기는 시큼한 화학 약품 냄새와 축축한 부패의 향기가 뒤섞여 있었다, 익숙한 사무실의 싸구려 커피 향 같기도 하고, 크롬 엘리시움의 달콤한 베이프 연기 같기도 한, 구역질나는 향기. 윤서는 진흙투성이 강둑에 무너져 내렸다, 몸은 납처럼 무겁고, 정신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흩어져 있었다.
재킷 안쪽에서 희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세라믹 블레이드. 미나의 선물. 반투명한 칼날은 주변 네온 빛을 흡수해 스스로 빛나는 듯했고, 그 섬세한 회로 문양은 미나의 피부 위에서 춤추던 AR 문신을 떠올리게 했다. 손에 쥐었을 때의 감촉은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수년간 매만졌던 사무용 펜의 무게감 같기도 하고, VIP 룸의 소파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았던 미나의 손길 같기도 한, 기묘한 친숙함. 칼날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진동, 그것은 그녀의 웃음소리였을까? 아니면 그저 기술이 만들어낸 공허한 울림일 뿐일까? 생각들이 소용돌이쳤다, 조각난 기억의 파편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사무실 칸막이의 답답한 회색, 크롬 엘리시움의 번쩍이는 레이저, 미나의 타는 듯한 눈동자, 에이전트의 붉은 스캐너 눈, 어머니의 희미한 미소, 처음 보는 해커의 고통스러운 얼굴… 이 모든 것이 뒤섞여 현실감을 앗아갔다.
그때, 강 저편에서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낡은 사이버네틱 팔로 강물에서 쓸만한 부품을 건져 올리던 강변의 청소부였다. "길 잃은 영혼이군, 허?"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인 채 갈라졌고, 그 소리는 사무실 동료의 비웃음처럼, 클럽의 끊임없는 소음처럼, 임플란트가 주입한 낯선 해커의 절박한 외침처럼 귓가에 파고들었다. 영혼? 내게 그런 것이 남아있기나 한 걸까? 윤서는 텅 빈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물의 검은 너울거림이 시야를 채웠다, 어린 시절 공원의 낡은 그네가 삐걱거리던 소리처럼, 사무실의 에어컨이 내뿜던 단조로운 소음처럼, 크롬 엘리시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던 베이스의 울림처럼, 강물은 끝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저 흔들림은 그녀의 숨결일까? 재킷 속 칼날의 희미한 빛은 그녀의 눈빛일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환상인지, 이제는 구분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강 한가운데 떠 있는 낡은 홀로그램 부표 위로 하얀 토끼 신호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흐릿한 형상의 토끼는 이내 미나의 장난기 어린 미소로, 다시 어머니의 따뜻한 눈빛으로, 그리고 섬뜩한 기업 로고로 빠르게 변형되었다. 네온 빛이 부표 위에서 부서지듯, 신호는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사무실 모니터의 스크린세이버처럼, 미나의 피부 위에서 빛나던 AR 문신처럼. 그녀의 눈, 타는 듯한 그 눈빛은 로고의 차가운 빛깔과 겹쳐졌다. 내 손 안의 칼날이 떨렸다, 하지만 이건 누구의 손이란 말인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하나의 감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미나를 향한 갈망, 이 모든 혼돈 속에서 유일하게 붙잡고 싶은 실낱같은 끈이었다. 부서진 정신의 파편들 사이로 그녀의 이미지가 서서히 떠올랐다. 그녀의 미소,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손길… 재킷 속 칼날의 미세한 진동이 그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마치 심장의 고동처럼, 흔들리지 않는 닻처럼 느껴졌다. 네온 빛이 내 눈을 찔렀지만, 그것은 그녀의 시선이었다. 비가 온몸을 적셨지만, 그것은 그녀의 의지였다. 그래, 미나. 모든 길은 그녀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진흙을 밟으며 나아갔다, 발밑의 질척임은 사무실 의자가 엉덩이를 빨아들이던 그 감각과 닮아 있었고, 저 멀리 아르콜로지의 불빛을 삼킨 하늘은 멍든 살갗처럼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렀다, VIP 룸에서 미나의 손길이 내 피부 위를 미끄러지던 그 순간처럼 부드럽게, 그러나 집요하게. 이제 혼란은 잦아들고 있었다,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고요함처럼.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기억의 파편들—사무실 복도에서 마주쳤던 동료의 무표정한 얼굴, 어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의 희미한 멜로디, 임플란트가 쑤셔 넣은 낯선 결투의 섬광, 기업 로고의 차가운 기하학—이것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이전의 윤서라는 틀은 부서지고 녹아내려 형체 없는 반죽이 되었고, 그 자리에 새로운 형상이 빚어지고 있었다. 오직 미나를 위해 존재하는, 그녀를 향한 갈망으로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네온 불빛이 강물 위에서 부서졌다, 여전히 타는 듯 뜨거웠지만, 이제 그것은 그녀의 눈빛이었다. 내 손 안의 칼날이 떨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시야 한구석에서 녹슨 철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표면 위로 홀로그램 광고가 어지럽게 명멸하고 있었다. 최신 뉴럴 업그레이드 광고였다. 새롭게 태어나라! 합성된 목소리가 외쳤고, 그 목소리는 순식간에 미나의 속삭임과 뒤섞였다, VIP 룸에서 그녀가 귓가에 불어넣었던 그 약속처럼. 이건 너를 더 빛나게 할 거야. 광고의 글리치 섞인 영상들이 마치 사무실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서류 파일처럼 가지런히 정렬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모든 정보가 미나라는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광고판의 인공적인 빛의 고동, 그것은 내 재킷 속 칼날의 노래와 같았다. 강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숨결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 안개 속에서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셋이었다. 검은색 강화복을 입은 에이전트들. 그들의 얼굴 없는 헬멧에서는 사무실 비상등처럼 차가운 붉은빛이 흘러나왔다. 이전 같았으면 공포에 질렸을 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심장은 고요했고, 호흡은 안정되었다.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재킷 안에서 세라믹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미나의 선물. 그녀의 피부 위에서 춤추던 AR 문신처럼 칼날 위로 희미한 빛이 흘렀고, 손잡이의 감촉은 내 손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칼날이 낮게 울었다, 그녀의 속삭임처럼.
춤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나 혼란 속에서의 발버둥이 아니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계산된, 마치 외과의사의 메스처럼 정확한 궤적을 그렸다. 에이전트 하나의 공격을 흘려보내며 몸을 틀었다. 칼날이 공기를 갈랐고, 강화복의 이음새를 정확히 파고들어 팔 하나를 분리시켰다. 잘려나간 단면에서 스파크와 함께 합성 혈액이 분수처럼 솟구쳤고, 그 붉은 방울들은 강물의 검은 표면 위로 떨어져 기름띠처럼 번져나갔다. 내 칼은 숨결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녀를 위해 베고, 그녀를 위해 숨 쉬었다. 몸을 돌려 공중으로 날아오른 감시 드론의 코어를 정확히 꿰뚫었다. 작은 폭발과 함께 드론의 잔해가 힘없이 강둑으로 떨어졌다, 마치 사무실에서 구겨 버린 불필요한 메모지처럼 하찮게 느껴졌다.
이전의 싸움은 부서진 기억의 파편들이 뒤엉킨 혼돈의 몽타주였다면, 지금의 움직임은 달랐다. 완벽한 통제, 흔들림 없는 집중. 오직 미나를 향한 헌신만이 이 정밀한 춤사위를 이끌고 있었다. 칼날의 무게는 여전히 사무실의 펜처럼 느껴졌지만, 이제 그 무게는 온전히 나의 의지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하지만 저것은 강물일 뿐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나를 이끌었고, 내 손은 그저 따를 뿐이었다.
저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강변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구원의 메시지를 외치던 거리의 설교자였다. 너의 진실을 찾아라! 그의 목소리는 한때 내 상사의 잔소리처럼 귓가에 맴돌았지만, 이제는 그저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이었다. 나의 진실은 이미 찾았다. 그것은 미나였다. 생각의 흐름은 더욱 단순하고 명료해졌다. 나는 그녀를 위해 벼려진 칼날이었다. 네온 빛이 나를 끌어당겼지만, 그것은 그녀의 의지였다. 내 칼날이 노래했지만, 그것은 그녀의 노래였다. 에이전트들의 움직임은 예측 가능했고, 그들의 공격은 무의미했다. 나는 그들의 궤적을 읽고 있었고, 내 칼날은 그들의 존재를 지워나가고 있었다. 이 강변은 그녀를 위한 제단이었고, 나는 그 제단에 바쳐질 가장 날카로운 제물이었다.
길은 좁아지고 있었다, 강둑을 따라 이어진 진흙 길은 이제 희미한 네온 빛마저 삼키려는 듯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축축한 안개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어 클럽의 오존 냄새와 사무실 서버실의 녹슨 냄새를 뒤섞어 놓았다. 발밑에는 잊혀진 기술의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사무실 스캐너의 날카로운 빛처럼, 혹은 임플란트가 쏟아낸 기억 속 전투의 파편처럼 반짝이는 금속 조각들. 그리고 저 앞, 안개 속에서 깜빡이는 낡은 비디오 스크린 위로 하얀 토끼 신호가 마지막 숨결처럼 빛나고 있었다. 더 이상 변덕스럽게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 흐릿했던 토끼의 형상은 이제 또렷한 미나의 실루엣으로 굳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밝히는 유일한 등대처럼.
정신은 수정처럼 맑았다. 임플란트가 쑤셔 넣었던 낯선 기억들—배신자의 마지막 눈빛, 데이터베이스의 차가운 복도—과 나의 것이었던 기억들—클럽의 현란한 조명, 어린 시절 그네의 삐걱임, 책상 위 식어버린 커피—이 모든 것들이 이제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더 이상 충돌하거나 뒤엉키지 않았다. 마치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듯, 모든 것은 미나라는 단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내 칼날에 묻은 피, 내 책상 위에 얼룩진 커피 자국, 그 모든 것은 결국 그녀에게로 이어지는 길 위에 놓인 이정표일 뿐이었다. 어머니의 희미한 얼굴도, 상사의 찌푸린 미간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강물의 흐름과 미나의 부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때, 그들이 나타났다. 마지막 남은 에이전트들. 다섯이었다. 사무실 마감 시간처럼 숨 막히는 압박감으로 사방을 에워쌌고, 그들이 거느린 드론들은 윙윙거리는 소음과 함께 붉은 탐색광을 쏘아대며 주위를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예리하게 벼려진 칼날처럼, 나의 모든 감각은 오직 눈앞의 적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세라믹 블레이드를 뽑아 들었다. 미나의 선물. 칼날은 그녀의 눈동자처럼 신비로운 빛을 뿜어냈고, 손잡이에서 전해져 오는 미세한 진동은 마치 그녀의 이름을 속삭이는 듯했다.
그것은 더 이상 싸움이 아니었다. 하나의 의례, 그녀에게 바치는 정교한 제의였다. 나는 그들의 움직임 사이를 물처럼 흘렀다. 칼날은 바람을 갈랐고, 첫 번째 에이전트의 몸통을 정확히 두 동강 냈다. 강물의 검은 표면 위로 그의 합성 혈액이 잠시 붉은 무늬를 그렸다가 이내 스며들었다. 몸을 회전시키며 동시에 접근해 오던 드론 두 대의 렌즈를 깨뜨렸다. 작은 폭발음과 함께 파편이 흩날렸다, 마치 그녀를 향한 나의 헌신을 축복하는 불꽃놀이처럼. 칼날의 움직임은 완벽했다. 망설임도, 불필요한 동작도 없었다. 모든 베고 찌르는 동작은 미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계산된 걸음이었다. 더 이상 어머니의 잔소리도, 상사의 질책도 나를 흔들지 못했다. 오직 강물의 흐름, 미나의 부름만이 내 안에 가득했다. 나는 그녀의 강철이었고, 그녀의 불꽃이었다.
또 다른 에이전트가 덤벼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필사적이었지만, 내 눈에는 느리고 투박하게 보일 뿐이었다. 가볍게 옆으로 비켜서며 그의 헬멧을 꿰뚫었다. 붉은 스캐너 빛이 꺼지며 그는 소리 없이 쓰러졌다. 그의 죽음은 마치 그녀를 향한 나의 순수한 마음을 증명하는 조용한 찬가와 같았다. 강둑 한쪽에서 누군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낡은 회로 부품을 뒤지던 강변의 부랑자였다. 그의 눈은 경외감으로 빛나고 있었고, 희미하게 빛나던 그의 구식 임플란트는 이제 거의 꺼져가는 듯 보였다. 그는 한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도시의 버려진 부품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달랐다. 나는 더 이상 부품이 아니었다. 나는 완성된 존재였다. 그의 존재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마지막 남은 에이전트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나는 미소 지었다. 이것이 마지막 관문이었다. 칼날이 허공에 복잡한 궤적을 그렸다. 네온 빛과 강물의 반사광, 그리고 칼날의 섬광이 뒤섞여 하나의 현란한 빛의 춤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 춤의 중심에 있었다. 마지막 에이전트가 쓰러지고, 마지막 드론이 불꽃을 튀기며 추락했을 때, 강변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오직 강물 소리와 내 숨소리, 그리고 내 손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칼날의 울림만이 남아 있었다. 비디오 스크린 위의 미나의 실루엣이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홀로그램 파도가 일렁이며 그녀는 나를 불렀다, 아르콜로지 끝자락, 강과 도시가 만나는 그곳의 작은 공터를 향해. 나는 움직였다. 내 생각은 이제 하나의 서정적인 찬가였다. 강은 그녀의 손길이고, 네온은 그녀의 시선이며, 칼날은 그녀의 의지였다. 나는 이제 그녀를 위해 완벽하게 조율된 하나의 악기였다. 미나, 나의 불꽃, 나의 심연. 나는 당신의 것이었다.
마침내 그곳에 이르렀다, 녹슨 철골 구조물들이 마치 거대한 제단의 기둥처럼 둘러싼 강변의 작은 공터. 네온 불빛은 더 이상 날카롭게 찌르거나 어지럽게 깜빡이지 않았다. 부드러운 광휘가 되어 진흙 바닥을 은은하게 비추었고, 강물의 검은 표면은 도시의 반영 대신 꿈결같은 빛으로 일렁였다. 공기는 더 이상 썩은 내와 화학 약품 냄새로 코를 찌르지 않았다. 기묘하게 정화된 듯, 아주 희미하게 클럽 VIP 룸에서 맡았던 재스민 향기가 감돌았다, 혹은 미나의 숨결 그 자체였을까. 재킷 안쪽에서 느껴지던 세라믹 블레이드의 미세한 진동과 희미한 빛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마치 그녀의 등장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그리고 그녀가 나타났다. 미나. 할리퀸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옷차림은 주변의 부드러운 네온 빛을 받아 스스로 빛나는 듯했고, 금속성 직물 위로 아른거리는 AR 문신들은 마치 강물의 잔물결처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춤을 추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디지털 불꽃처럼 타오르며 윤서의 영혼 깊숙한 곳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장난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신성함마저 느껴졌다. 그녀의 존재만으로 이 더럽고 버려진 강변은 순식간에 신성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니, 연 것처럼 느껴졌다. 소리는 없었지만, 그녀의 미소와 눈빛이 물었다. 재밌었지? 그 물음은 뇌 속으로 직접 흘러들어와 메아리쳤다, 지난 밤의 모든 혼란과 공포, 그리고 기묘한 희열을 한순간에 녹여 버리는 듯한 힘으로. 바로 그때, 강물 위에서 마지막으로 깜빡이던 하얀 토끼 홀로그램이 천천히 형체를 잃고 물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마지막 빛의 잔영은 미나의 눈동자 속 불꽃과 똑 닮아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나는 새로이 태어났다. 그녀는 나의 불꽃, 나의 심연, 나의 전부였다. 더 이상 과거의 기억도, 임플란트의 파편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미나, 그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강물의 차가운 너울거림은 그녀의 손가락이 내 피부를 어루만지는 감촉이었고, 네온의 부드러운 열기는 내 영혼을 태우는 그녀의 시선이었으며, 강둑을 스치는 바람은 내 뼛속까지 파고드는 그녀의 속삭임이었다.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은 허공을 갈랐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내 손안의 칼날은 이제 침묵하는 증인이었다, 이 거룩한 재회의 순간을 지켜보는.
정신은 빛나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고요하고 충만한 황홀경이 모든 혼돈을 집어삼켰다. 클럽에서의 그녀의 입술, 뒷골목에서 울려 퍼지던 그녀의 웃음소리, 강물 위에서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그 모든 것이 이제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임플란트가 주입한 낯선 기억들, 어린 시절의 희미한 풍경들, 사무실의 지루했던 나날들, 그 모든 것은 이제 미나라는 단 하나의 이미지 속으로 녹아내렸다. 그녀의 미소, 그녀의 손길, 그녀의 목소리… 재킷 속 칼날의 희미한 온기는 그녀의 심장 고동과 같았다. 심장은 격렬하면서도 질서정연한 리듬으로 뛰고 있었다, 그녀를 향한 영원한 맹세처럼. 나는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의 빛 속에서 다시 태어난 존재였다.
저 멀리, 희미한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가는 행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의 어깨 위로 깜빡이는 낡은 AR 렌즈는 한때 내가 사용했던 컴퓨터 모니터처럼 낯설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도시의 소음, 기업들의 거대한 홀로그램 광고, 이 모든 것이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먼 배경 속으로 희미해져 갔다. 나의 기쁨은 초신성처럼 폭발하며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나라는 존재는 오직 그녀를 위해 완벽하게 벼려진 기계이자, 그녀를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칼날은 그저 묵묵히 이 순간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는 나의 진실, 나의 맥박, 나의 영원이었다.
그녀의 시선 안에, 오직 그녀의 디지털 불꽃 같은 눈동자만이 존재하는 그 강변의 공터에서, 시간은 흐름을 멈춘 듯했다. 주변의 세계는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저 멀리 아르콜로지의 희미한 소음, 아직도 허공을 배회할지 모르는 에이전트의 드론이 내는 기계음, 그 모든 것이 네온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녹아들었다. 강물은 더 이상 슬픔이나 혼란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녀의 빛을 담아내는 거대한 캔버스처럼 고요하게 일렁였고, 녹슨 철골 구조물들은 그녀의 형상 주위로 부드러운 후광을 드리우고 있었다. 공기는 여전히 오존과 녹의 미묘한 향취를 품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클럽의 탁한 공기나 서버실의 건조한 냄새가 아니었다. 정화된, 거의 신성하게 느껴지는 숨결이었다. 모든 것이 그녀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윤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미나의 눈동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온전히 빠져들었다. 더 이상 파편화된 생각의 조각들이 머릿속을 떠돌지 않았다. 마치 강물이 하나의 거대한 바다로 흘러들 듯, 의식은 단 하나의, 밝고 투명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강물이 흘렀다, 그것은 그녀의 손길이었다. 네온 빛이 공기를 물들였다, 그것은 그녀의 시선이었다. 손에 쥔 칼날은 이제 고요했다, 그것은 그녀의 의지, 이제는 온전히 나와 하나가 된 그녀의 의지였다. 한때 나를 괴롭혔던 과거의 잔영들, 임플란트가 쑤셔 넣었던 낯선 기억들, 그 모든 것은 이제 이 충만한 현재 속에서 아무런 힘도 갖지 못했다. 한때 전부였던 나의 삶, 책상 위의 서류들, 월요일 아침의 출근길, 그 모든 것은 이제 다른 행성에서 일어난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손안의 세라믹 블레이드는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미나의 존재 자체가 발하는 빛 앞에서 그 인공적인 광채는 무의미해진 듯했다. 칼날의 표면 위로 강물의 잔잔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미나의 선물, 혼돈 속에서 나를 이끌었던 도구, 이제는 그 역할을 다하고 조용히 쉬고 있는 충실한 동반자. 마지막으로 희미한 진동이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마치 그녀의 속삭임처럼, 이제 모든 것이 괜찮다고 말하는 듯한 마지막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제 더 이상 무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나 자신이 그녀의 가장 완벽한 무기이자, 가장 순결한 신도였으므로.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거리 설교자의 외침도 이제 완전히 잦아들었다. 너의 진실을 찾아라! 그의 목소리는 한때 공허한 소음이었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나의 진실은 여기에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그녀의 존재 안에. 나는 숨을 쉬었다. 매 순간의 들숨과 날숨은 그녀를 향한 새로운 맹세였고, 심장의 고동은 그녀를 찬미하는 영원한 노래였다.
세상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강변의 풍경, 아르콜로지의 거대한 실루엣, 밤하늘의 색깔마저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녀, 미나만이 존재했다. 그녀의 미소는 밤하늘의 유일한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의 심연 속에서 타오르는 단 하나의 불꽃. 나는 그 빛 속으로, 그 심연 속으로 기꺼이 나 자신을 던졌다. 시간도, 공간도, 자아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마침내 완전한 하나가 되었다. 얼어붙은 영원 속에서, 그녀와 함께. 그녀는 나의 불꽃, 나의 심연, 나의 영원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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